사파의 주인, 레드다오족 — 붉은 두건 뒤에 숨겨진 것들

사파 시장 한 귀퉁이, 사파의 주인 레드다오족 여자들이 모여 앉아 있었다. 쪽빛 옷을 두른 흐몽족 여성들 사이에서 유독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머리에는 진홍색 천 두건, 옷깃에는 손으로 한 땀 한 땀 놓은 자수. 이마 위 머리카락은 밀려 있고, 눈썹 선이 뚜렷하게 그어져 있었다. 내가 처음 사파에 왔을 때 그 여성을 보고 한동안 말을 잃었던 게 기억난다.

그 붉은 두건이 레드다오족의 표식이라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레드다오족. 베트남에서는 ‘다오 도(Dao Đỏ)’, 붉은 다오족이라 불린다. 입는 옷에서 두건까지, 붉은색이 그들의 정체성이다. 사파에 10년 넘게 살면서 그들을 수없이 마주쳤지만, 알면 알수록 더 모르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레드다오족을 이해하려면 먼저 하나의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들은 사파에 사는 게 아니라, 사파가 그들의 땅에 생긴 것이다. 관광지로 이름이 알려지기 훨씬 전부터 이 산자락에서 밭을 일구고, 약초를 캐고, 천을 짜온 사람들이 레드다오족이다.

레드다오족을 처음 알아보는 법

레드다오족 전통 자수 의상

사파에서 여러 소수민족이 섞여 지내다 보니, 처음 오는 여행자들은 누가 어느 민족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레드다오족은 비교적 알아보기 쉬운 편이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두건이다. 크고 둥글게 두른 진홍색 천 두건 — 이마를 가리거나 높이 올려 묶는 방식은 마을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그 붉은색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옷은 대부분 검은 바탕에 붉은색과 흰색 자수가 촘촘하게 박혀 있다. 앞섶을 여미는 방식, 소매 끝 패턴 하나하나가 마을의 전통을 담고 있다.

또 하나가 이마다. 레드다오족 여성들은 전통적으로 이마 위 머리카락을 밀고 눈썹을 다듬는다. 현대화된 젊은 여성들은 이 관습을 따르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나이 든 여성들에게는 여전히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의 기준이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낯설게 보일 수 있지만, 그 기준이 수백 년간 이어졌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약초탕 — 몸이 기억하는 전통

사파 레드다오족 약초탕

레드다오족 이야기를 하면서 약초탕을 빼놓을 수 없다. 사파에서 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레드다오 문화 체험이기도 하다.

그들의 약초탕은 단순한 스파가 아니다.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레시피대로 산에서 직접 채취한 약초를 끓인다. 어떤 마을에서는 열두 가지, 어떤 가정에서는 그보다 훨씬 많은 약초를 배합한다. 혈액순환, 피로 회복, 산행 후 근육 이완 — 실제로 사파 트레킹을 마친 손님들이 약초탕을 하고 나면 “다리가 살아났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레드다오 가정을 처음 방문했을 때, 할머니 한 분이 마당 한켠에서 약초 단을 손질하고 있었다. 어떤 약초인지 이름을 물어봤지만 현지어 이름만 알 뿐 한국어로 옮길 방법이 없었다. 그게 오히려 더 인상적이었다. 수백 년 된 지식이 문서 없이, 오직 기억과 손으로만 전해진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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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다오족의 자수 — 팔려나가는 것과 남겨지는 것

사파 시장 레드다오족 자수 판매

사파 시장에 가면 레드다오족 여성들이 만든 자수품들이 넘쳐난다. 가방, 파우치, 팔찌, 벽걸이. 구매하는 여행자도 많고, 그 수익이 가정에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10년간 보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팔려나가는 것과 집에 남겨두는 것이 다르다는 것. 시장에 나오는 자수품들은 대부분 관광 수요에 맞게 간소화된 패턴이다. 색깔도 더 화려하고, 단가를 맞추기 위해 바느질도 빨라진다. 하지만 집에서 어머니가 딸의 혼수 짐 위에 올려놓는 자수는 다르다. 몇 달을 공들인 것, 전통 문양 그대로, 색도 원칙대로.

어느 날 레드다오 마을에서 한 노인이 오래된 웃옷을 꺼내 보여줬다. 수십 년 된 것이라고 했다. 천은 닳았지만 자수는 살아있었다. “이건 팔지 않아요”라는 말이 그날 오래 머릿속에 맴돌았다. 모든 것이 팔릴 수 있는 시대에, 팔지 않는 것을 갖고 있다는 것. 그게 그 사람의 마지막 경계선처럼 느껴졌다.

사파 소수민족 전반에 대한 이야기는 이전 글에서 먼저 읽어보세요.

관광화 속에서 레드다오족이 서 있는 자리

사파 레드다오족 산간 마을

사파가 유명해지면서 레드다오족의 생활도 많이 바뀌었다.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고, 스마트폰을 쓰고, 영어를 배운다. 시장에서 흥정하는 젊은 여성들은 한국어 단어 몇 가지를 알고 있다.

변화가 나쁜 건 아니다. 관광 수입이 들어오면서 생활 수준이 나아진 가정도 많다. 다만 10년을 보면서 놓치고 싶지 않은 질문이 하나 있다. 그 변화가 그들이 선택한 것인가, 아니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온 것인가.

레드다오족 마을 깊숙이 들어가면 아직 관광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들이 있다. 그런 마을에서는 여전히 밭에서 일하는 할머니가 두건을 두르고, 마당에서 아이들이 레드다오어로 이야기하고, 저녁에는 약초 끓이는 냄새가 난다. 그 장면들이 언제까지 남아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아직 있다.

레드다오족을 만나는 가장 좋은 방법

레드다오족 마을 산길

사파 시내에서 레드다오족 여성들과 사진을 찍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게 레드다오족을 만난 것은 아니다.

레드다오족의 삶에 조금 더 가까이 가려면 마을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따반, 타핀, 반포 쪽 마을들이 레드다오족이 주로 사는 곳이다. 사파 시내에서 20~40분 거리지만, 현지 가이드 없이 가면 집 앞에서 어색하게 서 있다 돌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마을 사람들도 낯선 방문자를 반기는 표정을 짓지 않는다.

직접 연결된 가정이 있으면 다르다. 차 한 잔을 얻어 마시고, 자수 작업을 옆에서 구경하고, 약초탕을 집에서 경험하는 것. 그 시간이 사파에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장면이 된다. 수백 명의 손님을 그 마을로 데려갔고, 돌아올 때 같은 말을 한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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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편 예고

다음 편에서는 사파의 또 다른 소수민족인 흐몽족 이야기를 할 예정입니다. 레드다오족이 붉은색이라면, 흐몽족은 쪽빛이다. 같은 산에서 살면서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대하는 두 민족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하롱베이에 거주하며 투어가이드·여행사 운영·현지 투자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개인 투어 상담 및 여행 문의는 상단 메뉴의 ‘투어 문의‘를 이용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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