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다섯 시, 하노이를 떠난 기차가 라오까이역에 천천히 멈춰 선다.
라오까이 여행을 목적으로 이 도시에 오는 사람은 드물다. 플랫폼에 내리는 순간부터 사방에서 소리가 들린다.
“사파? 사파?” 기사들이 외치고, 여행자들은 번호를 확인하며 픽업 차를 찾는다. 이 도시는 누군가에게 그냥 경유지다. 잠깐 내렸다가 다시 차에 오르는 곳.
나는 이 역에 열 번도 넘게 섰다. 그때마다 한 번도 곧장 차를 타지 않았다.
라오까이 여행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
홍강(Red River)이 이 도시를 가로지른다.
강 건너편에 보이는 것이 중국의 허커우(河口)다. 거리가 채 몇 백 미터가 안 된다. 베트남의 낮은 지붕과 좁은 골목 너머로, 중국 도시의 고층 아파트와 네온사인이 선명하게 서 있다. 같은 하늘 아래, 두 나라가 나란히 있다. 이런 풍경은 흔치 않다.
국경 다리 위에 서면 더 직접적으로 느껴진다. 다리의 한쪽에는 베트남 국기가, 반대쪽에는 중국 국기가 펄럭인다. 다리를 매일 건너는 사람들 — 장사꾼, 노동자, 짐꾼 — 그들에게 국경은 거창한 개념이 아니라 그냥 출퇴근길이다.
시장에 가면 더 분명해진다. 위안화와 베트남 동이 함께 돌아다니고, 가판대 물건이 어느 나라에서 온 것인지 구분이 안 된다. 상인들은 중국어와 베트남어를 번갈아 쓴다. 언어도, 물건도, 돈도 경계를 넘는다. 라오까이는 경계가 사라지는 곳이 아니라, 경계가 가장 선명하게 보이는 곳이다.

야시장과 강변 산책로
해가 지면 역 근처 야시장이 열린다.
소수민족 여성들이 가져온 자수 제품, 중국에서 넘어온 생활용품, 베트남 길거리 음식이 한 줄에 늘어선다. 관광객을 위해 꾸며진 시장이 아니다. 라오까이 사람들이 실제로 장을 보러 오는 곳이다.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이 도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인다.
홍강 산책로는 이른 아침에 걷기 좋다. 강물이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흘러오는 것을 보면서, 물은 국경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강 건너 중국 쪽 불빛이 꺼지는 동안, 이쪽에서는 하루가 시작된다. 새벽 기차를 타고 라오까이에 도착했다면, 사파로 서두르기 전에 이 산책로를 한 시간 걸어보는 것을 권한다.

라오까이 여행, 언제 가면 좋을까
사파 일정에 맞추다 보면 계절을 따로 고려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라오까이는 어차피 지나치는 곳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데 10년을 이 지역에서 지내며 느낀 건, 이 도시는 계절마다 전혀 다른 표정을 가진다는 것이다.
봄 (3월~4월) 은 라오까이에서 사파로 올라가는 산길에 복숭아꽃과 자두꽃이 피는 시기다. 라오까이 시내는 덥지 않고 쾌적하다. 한국인 여행자가 가장 많이 몰리는 성수기이기도 하다. 야시장이 북적이지만, 그 활기 자체가 볼거리가 된다.
여름 (5월~8월) 은 우기다. 비가 잦고, 홍강의 수위가 눈에 띄게 올라간다. 강변에 서면 물살이 빠르고 강폭이 넓어 보인다. 강 건너 허커우의 풍경이 빗속에서 더 몽환적이다. 여행자가 줄어드는 계절이라 야시장이 오히려 여유롭고, 사람 냄새가 더 진하게 난다.
가을 (9월~11월) 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다. 맑고 건조한 날씨가 이어진다. 10월이 되면 라오까이에서 사파로 올라가는 산길 주변 계단식 논이 황금빛으로 물든다. 이 시기에 라오까이를 경유한다면, 서두르지 말고 강변에서 아침을 한 시간 보내보길 권한다. 후회하지 않는다.
겨울 (12월~2월) 은 사람이 가장 적다. 라오까이 시내는 쌀쌀하지만, 사파처럼 눈이 내리는 경우는 드물다. 안개가 자주 끼는데, 강 건너 허커우 풍경이 안개에 가려 흐릿하게 보이는 그 모습이 이상하게 이 국경 도시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라오까이에서 사파까지 — 이동 방법
라오까이역에서 사파까지는 차로 약 1시간 30분이다.
공유 미니버스를 타면 40,000~60,000동 선이고, 기차 도착 직후 역 앞에서 바로 탈 수 있다. 개인 차량은 30만~40만 동 정도에서 흥정이 되는데, 새벽 도착 직후에는 호객이 심하니 서두르지 말고 가격을 확인하는 것이 좋다. 라오까이에서 하루 묵고 싶다면 역 근처 게스트하우스가 실용적이다. 사파 트레킹 후 기차로 돌아오는 일정이라면, 귀국 전날 라오까이에서 숙박하면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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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까이가 남기는 것
나는 한동안 이 도시를 그냥 지나쳤다.
기차에서 내리면 픽업 차를 타고, 사파에 도착하면 라오까이는 이미 잊혀 있었다. 그렇게 몇 번을 스쳤다. 어느 날, 기차 연착으로 새벽 두 시간을 역 근처에서 보낼 일이 생겼다. 혼자 야시장을 걸었고, 강변에 앉아 중국 쪽 불빛을 바라봤다.
그게 시작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이 도시를 그냥 통과하지 않는다.
어떤 장소는 목적지가 아니어도 기억에 남는다. 라오까이가 그런 곳이다. 두 나라의 경계에 서서, 다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여행이 그런 것이 아닌가. 계획한 곳이 아닌 곳에서, 계획하지 않은 것을 경험하는 것.
라오까이 여행은 사파로 가는 길 위의 여백이다. 그 여백을 그냥 넘기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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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편 예고 다음 편에서는 드디어 사파에 도착합니다. 라오까이를 벗어나 구불구불한 산길을 오르는 그 순간 — 사파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를 씁니다.
✍️ 글쓴이 소개 하롱베이에 거주하며 투어가이드·여행사 운영·현지 투자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개인 투어 상담 및 여행 문의는 상단 메뉴의 ‘투어 문의’를 이용해 주세요.